본문 바로가기

일기

햄버거

저는 햄버거를 좋아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햄버거 프렌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를 1년 조금 넘게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니폼을 갈아입고 근무에 들어가기 전 주방 입구에서 마치 군대의 복무신조 같은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문구를 소리내서 읽고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부다 기억나진 않지만 마지막은 이런 구문이었습니다.
"...(일터는) 우리의 사회 경험 도장이다."
이렇게 낭독을 하고
"근무 들어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말그대로 저에겐 첫 사회경험 훈련장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매장은 번화가가 아니라 동네 시장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침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 즈음에 다음 근무자가 출근을 하는데 그때까지 혼자서 매장 오픈준비를 했었습니다. 오픈 준비를 마치고 한가한 시간에뭔가 재미있는 것을 찾다가 실물 햄버거와 메뉴판의 햄버거 사진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진과 똑같은 햄버거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세밀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을 자세히 관찰한 후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빵은 표면에 상처가 없는 놈으로 정해진 시간 토스트를 합니다. 빵의 안쪽을 토스트하는 이유는 흔히 빵냄새라고 하는데, 밀가루의 카라멜라이징 효과로 단맛을 내기 위함이기도 하고 바삭하게 토스트하면 코팅이 되어 소스와 육즙이 빵에 스며들지 않게 됩니다.

마요네즈는 위쪽 빵에 둥근 링모양으로 충분히 바릅니다. 마요네즈는 햄버거 맛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소스, 음식으로써의 마요네즈는 아주 강한 고소한 맛을 내서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요네즈 위에 양상추를 올립니다. 햄버거 가게 메뉴판에서 양상추가 삐져나와있는 것을 보면 진한 초록색으로 표현되는데 실제로 양상추의 진한 초록색은 실제로 식감이 아삭하지 않습니다. 색깔의 대비로 더 맛있게 보이기 위해서 진한 초록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양상추를 흰색 부분만 사용하고 싶지만 사진과 똑같이 만드는게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바깥쪽에 조금만 초록색으로, 안쪽에는 아삭한 흰색 부분으로 동그랗게 잘 포개서 준비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양상추 쪼가리가 없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햄버거를 다 먹고 포장지에 소스와 양상추쪼가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의 만족감은 햄버거를 고급음식으로 인식하느냐, 정크푸드로 인식하느냐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메뉴판의 사진에는 아래쪽 빵과 패티 사이에 소스가 맛있어 보이게 삐져나와있는데 실제로 소스가 눈에 보인다면 한입 앙 베어물었을 때 소스가 흘러서 입과 턱에 소스가 묻어 불쾌합니다. 매장에 있는 소스 디스펜서를 사용하면 빵 한가운데 적당량을 뿌리고 패티로 살짝 덮어놓으면 완제품 상태에서는 소스가 잘 보이지 않지만 먹을때 햄버거를 살짝 누를때 소스가 자연스럽게 전체적으로 펴발라지게 됩니다. 사진처럼 표현하기 위해서 숟가락으로 살짝 펴발라서 사진과 비슷하게 표현해줍니다.

소스 위에 다진 양파를 한줌 올리는데,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양파는 음식에서 단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 햄버거 먹고 손에서 없어지지 않는 냄새는 양파가 역할을 충실히 다했기 때문입니다. 또 양파의 흰색은 햄버거의 전체적인 색깔에 하이라이트 효과를 줘서 맛있어 보이게 합니다. 양파는 그렇게 소스와 어우러져서 시각과 미각, 후각을 담당합니다.

패티는 덜 익거나 타지 않게 그릴에서 치이익 구워서 소스 위에 덮고 그 위에 소스를 한번 더 뿌립니다. 그리고 위 아래 빵을 예쁘게 포갭니다. 소스가 햄버거 에서 적당히 삐져나오면서 동시에 포장지에는 절대 묻지 않도록 포장을 해야합니다. 포장지를 열었을 때 보이는 햄버거가 사진과 똑같다면 이건 살아있는 겁니다.

세트메뉴에 포함되는 후렌치후라이도 역시 정성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냉동상태의 포장에서 길쭉길쭉 한 것만 골라서 메뉴얼 대로 30분간 해동을 하고 아침에 준비한 깨끗한 기름으로 180도 온도를 맞춰서 정확한 시간(기억하기로 2분30초?) 튀겨냅니다. 부러지지 않게 트레이에 쏟아놓고, 시즈닝을 하고 뒤적뒤적 합니다. 부러지지 않게 천천히 시즈닝을 합니다. 몇 cm 위에서 몇초간 살살살. 그리고 역시 부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저어줍니다. 스쿠퍼를 사용하지 않고 집게를 사용해서 빨간색 후렌치후라이곽에 하나씩 꼽습니다. 사진과 번갈아 봐가면서 최대한 비슷하게 빽빽하게 꼽습니다.

컵에 얼음을 1/3만큼 넣고 손님에게 나가기 직전에 콜라를 담아야 광고에서 보던 탄산이 화아악 터지는 소리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처음 온 손님에게는 이렇게 햄버거를 만들어서 드렸습니다. 손님은 알지 못했겠지만 손님과 주방의 저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엄지를 들어보이며
"맛있게 드십시오"
라고 무언의 인사를 했었습니다.

요새 제가 사는 동네에 제가 좋아하는 햄버거 프렌차이즈가 생겨서 어플을 설치해보니 쿠폰을 쏠쏠하게 챙겨줘서 한번 한번 찾다보니 회원 등급이 꽤 올라갔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햄버거를 먹을 때 마다 햄버거 만드는 단계가 머리 속에 떠오를 것입니다. 잘만들었는지 확인차 한번 열어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들과 햄버거를 먹겠습니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리기 준비물  (0) 2023.09.22
달릴 준비  (0) 2023.09.19
퇴근길 서태지  (2) 2023.09.14
새벽 수유, 라디오  (0) 2023.09.13
오늘의 일기  (0)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