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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새벽 수유, 라디오

약 4개월 아기가 분유거부가 심해서 밤에 잠들고 나서와 잠에서 깨기 전에 꿈수를 해야 겨우 분유를 먹는다. 어제밤에 양껏 먹이는 것을 성공했고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기 전에 한번더 먹일 생각을 하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왠걸 아침 5시반 아기의 심한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아침분유 미션을 성공해야만 한다. 분유를 타서 자리에 앉았다. 주황이(둘째태명)가 좋아하는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을 틀었다.
안방의 조용한 새벽 공기 속에 잔잔한 기타 선율과 내 품에 안겨 쌔근대는 아기. 폭풍전야랄까.
역시나 눈 뜬 상태에서는 분유를 조금 빨고 고개 돌리기를 계속 반복했다. 그래도 조금씩 이라도 먹기 때문에 그 반복을 계속 해야한다.
음악이 끝나고 우연히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검색했다. 유튜브의 방송국 채널에서 옛날 라디오 방송을 올려주는 건데 그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을 눌렀다.
1991년 12월 공개방송이다. 이경규가 고정패널로 나오고 변진섭이 노래를 불렀다. 제목은 "너와 함께 있는 이유" 그 시절 분위기 물씬나는 발라드 곡이다. "잠시 전하는 말씀 듣고 오겠습니다" 라는 멘트도 한다. 지금도 이 멘트를 하는 지 모르겠다. 어릴 땐 이 멘트가 어쩜 그리 고급스럽던지.
이문세가 오프닝 멘트로 이런 얘기를 했다. 아기가 모유나 분유를 먹다가 그것 말고 맨 처음 먹는 것이 보리차라고 한다. 처음 아기에게 보리차를 먹일 때 엄마는 보리차를 작은 숟가락에 떠서 조심조심 아기 입에 넣는다. 처음엔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크고 나이를 먹으면서 김치나 마늘 같은 자극적인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극적이고 더 깊은 맛을 알게 된다는 그런 얘기였다.
지금 내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고 분유를 먹이면서 고개를 획획 돌리 때마다 초고속 센서가 달린 로봇팔처럼 젖병이 입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제발 먹어라 먹어라 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아기가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먹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내 상황 내 기분을 알고 얘기를 해주는 것 같은 기분, 이게 라디오 만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방송은 1991년 12월 방송이다. 무려 32년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라디오와 청취자의 만남이었다.
아기는 준비한 분유의 반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아서 먹이는 걸 포기했다. 엄마에게 다음을 맡기고 나는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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